책의 자리2010. 4. 17. 19:00

욕망의 심리학Satisfaction : 내 마음은 상처받지 않는다

카트린 방세 저/이세진 역

북 폴리오








   욕망이 연결되면 문제인 양 몰아가는 느낌이 있다. 그런 금욕적인 태도의 이면에는 욕망에 대한 혐오가 있는지도(그런 의미에서 과거 종교에 사로잡혀 속죄하며 살아가던 사람들의 유물이 아닐까 하는 의심도 있다). 예를 들어 다이어트는 늘 개인적인 영역으로 치환되며, 살을 빼고 빼지 않고가 '자기 자신을 통제하는' 이미지가 된다. 그러니까 다이어트에 성공하면 자기를 잘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고, 체중 관리에 실패하면 의지 박약인 셈. 하지만 체중 조절은 매우 다양한 부분 중 일부일 뿐이며, 자신의 기준 체중이 모두 다를 수도 있고 건강과 관련될 수도 있다. 일에서는 성취를 이루었어도 체중이 못마땅하다는 이유로 좌절할 것 없다는 거지.






  자기 존재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절대로 기분 좋게 살아갈 수 없다. 그는 고독과 심원한 혼란밖에 발견하지 못한다. 자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실현하지 못하는 사람은 영원히 타인의 욕망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그런 사람은 타인의 시선 안에서만 존재하고 그 시선들만이 그에게 삶을 부여한다.
  -욕망의 심리학, 카트린 방세, 185쪽

  때로는 정반대로, 자신이 타자의 문제들을 떠맡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들은 타자를 돌봐주기를 좋아하고, 타자가 자신들을 돌봐주는 것도 좋아한다. 그래서 타자를 돕고, 보호하며, 자신이 대우받고 싶은 방식대로 대우한다. (중략) 사실, 그들은 자신의 전능함을 발휘하고 싶은 욕망에 부응할 뿐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타자의 행복을 위해 행동하는 이상 타자는 자기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는 대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을 위해 행동한다는 좋은 동기를 갖고 맹렬히 헌신하기는 하지만 그들의 일차적 목적은 자기 자신에게 가치 있는 이미지를 부여하는 데 있다. 그들은 이 한없는 친절과 광용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것이다.
  -205~206쪽



  이런 문제들을 두고 고민하는 것은 일견 우스운 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자기자신을 오롯이 바라보고 대면하게 만드는 것을 도와주는 작용을 하기도 한다. 문제는 저런 문장들을 절대적인 진리인 양 여기면 안된다는 것인데, 모든 문제를 단순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증상을 보고 반성하는 것이 아니라 그 증상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것.
  아, 그리고 어떤 문제도 신경쓰고 곤두세우는 동안에는 해결되지 않더라. 추상화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저 문장들을 온전한 문장으로 받아들여야 할 뿐, 그것을 자기 판단의 기준으로 삼아서 자신을 비난하거나 자학하는 게 가장 안좋은 케이스인 것 같다. 저런 문장을 다이어리 구석에 베껴적은 내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지만, 아무튼 그렇다.


  욕망이 연결되면 문제인 양 몰아가는 느낌이 있다. 그런 금욕적인 태도의 이면에는 욕망에 대한 혐오가 있는지도(그런 의미에서 과거 종교에 사로잡혀 속죄하며 살아가던 사람들의 유물이 아닐까 하는 의심도 있다). 예를 들어 다이어트는 늘 개인적인 영역으로 치환되며, 살을 빼고 빼지 않고가 '자기 자신을 통제하는' 이미지가 된다. 그러니까 다이어트에 성공하면 자기를 잘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고, 체중 관리에 실패하면 의지 박약인 셈. 하지만 체중 조절은 매우 다양한 부분 중 일부일 뿐이며, 자신의 기준 체중이 모두 다를 수도 있고 건강과 관련될 수도 있다. 일에서는 성취를 이루었어도 체중이 못마땅하다는 이유로 좌절할 것 없다는 거지.
  식욕 뿐 아니라 돈에 대한 탐욕이나 성공에 대한 욕망마저 어느 선을 넘어서면 혐오의 대상이 된다. 쿨하다는 건 욕망이 없거나 최소한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 모든 것을 거쳐온 사람들이 보이는 '욕망 없는' 태도가 패배로 인한 좌절감과 더 이상 다치기 싫어서 내보이는 모습으로 보인다. 가끔 궁금한 것은 이런 욕망들의 기원을 캐들어가면, 자신이 아니라 타인이 되지 않을까 하는 부분. 남들이 나를 더 멋지게 봐 주면 좋을 것 같아 멋진 차를 타고 비싼 옷을 입고 살을 빼는 것 아닌가? 오롯이 자신의 만족을 위해 움직이는 시간이라는 건 하루에 몇 분 정도나 될까? 아니면 몇 초?


  욕망을 바라보며 타아를 구분하는 것이 먼저다. 무언가를 할 때, 그 무게를 가늠하고 당연한 듯 흐름에 몸을 맡기기 전에 한 번쯤 생각할만하지 않을까? 내 욕망인가 혹은 타인의 시선 내부에서 잘보이기 위함인가. 과연 다른 사람이 감탄하는 것을 위해 내가 이 정도의 수고를 해야하나? 그 감탄이라는 건 아주 짧고 유한한 것일 텐데? 설령 무한한 감탄과 찬사라고 하더라도, 그게 내게 무슨 소용인데?



Posted by 이카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