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은2010. 7. 9. 18:45


  감정의 가장 큰 적은 그 감정의 진정성을 짚어보는, 말끄러미 응시하는 시선이다. 그 시선의 앞에서도 견고하게 유지되는 감정은 없고, 설령 있어도 시간 앞에 금방 허물어지더라. 자꾸만 가짜 감정을 만들어내고, 없는 생채기를 내고 싶었던 시절이 있었다. 금기가 상처를 만들고, 그 상처는 인생의 필수 영양소처럼 내게 자양분을 주고. 꿈에서 깨기 싫은 사람처럼 도리머리를 하며, 어떻게든 그 감정 안에 안주하고 싶었다. 지금 나는 힘들어. 나는 아파. 나는 널 좋아해. 나는 행복해. 화났어 뭐 이런 감정들은 그냥 순간이고, 그 뿌리를 찾아가다보면 허무하게 스러지고야 만다. 그걸 찾지 못한 이들은 거짓말을 하고, 사실 별로 아프지 않은 것들을 부풀린다. 지나치게 부푼 자의식이나 자기학대, 거짓말, 싸이월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한 줄로 감정을 건드리는 간지글들에서 결핍과 마주친다. 특징은 디테일이 생략된다는 것. 자신의 감정을 추상화시켜 던져놓는거지.
  지금의 내게 굳이 인생의 소설을 꼽으라고 한다면, 모파상의 목걸이를 꼽겠다. 가장 절실하게 와닿고, 사람의 감정이 다 그런 식인 것 같아서. 그러니까, 가짜 다이아몬드를 갚기 위해 꼬부라진 할머니가 되는 것이 두렵고 부럽다. 평생을 바칠만한, 밑 빠진 독처럼 감정을 퍼부을 수 있는 대상이 있었으면 좋겠다. 사건이 없었던 건 아니나 인생을 걸만하지 않다.(그 목걸이가 가짜임을 알면서 청춘을 바칠수는 없다.) 쉽게 싫증내고 굳이 그 뿌리를 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 남들보다 좀 더하겠지만, 남들이라고 덜하지 않을 것 같다. 타인의 감정, 그들이 보석처럼 쥔 것들이 이상하고, 어떤 신념이나 믿음 혹은 애정이나 분노, 증오마저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게 된다. 그게 정말 사랑이고 신념이고 믿음이며 분노인가, 그 감정의 시작부터 밑바닥까지 들여다보긴 한건가, 그냥 그 감정의 급류 위에서 정신 못차리고 떠다니는 건 아닌가. 말끄러미, 오랫동안 숙고한 후에도 남아있는 감정이라면, 그런 걸 가지고 있다면 나는 그 사람을 진심으로 질투할 수 있을 것도 같다.


Posted by 이카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