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자리2010. 4. 2. 12:29

용서의 기술Forgive to live : 심리학자의 용서 프로젝트
딕 티비츠 저 / 한미영 역
알마












  심리학자의 용서 프로젝트라는 가제가 붙은 딕 티비츠의 책 '용서의 기술'은 용서하지 않으면 화를 내는 자신이 다친다는 단순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물론, 심리학 책과 연애서는 다들 단순한 이야기를 한다. <감정을 억누르면 결국 몸이 아프거나, 이후 더 심한 정신적 문제가 생긴다><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he's just not that into you. 그러니까 그 남자에게 전화하지 마라Don’t call that man!>라던가.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결코 서두르지 않고, 과거의 기억을 파고들 것. 작은 디테일이 아니라 큰 틀을 생각할 것. 막판에는 살짝 삼천포에 빠진다는 느낌도 들고, 처음 보는 생경한 얘기가 아니라 다 알고 있는 이야기를 다루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한 번쯤 읽으면서 자신의 분노에 대해 그리고 용서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우리 대부분이 잘못된 이유에서 화를 담아두는 데에만 집착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화를 해소하는 데에서도 잘못된 길을 택하곤 한다. 많은 사람들이 다음 제시하는 일곱 가지 방법을 써보지만 그중 어느 하나도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


  첫째, 아무 일도 없는 척하기 또는 상처 무시하기

  “아무일도 아니었어” “잊어버려. 더 심한 언행을 겪은 적도 있는걸” “벌써 다 잊어버렸어. 그러니까 다시 일이나 하자” 우리는 이런 말들로 자신이 받은 상처를 외면하고 상처의 심각성을 얕잡아 본다. 그리고 이렇게 해소되지 못한 상처들은 다시 살아나 우리를 물어뜯는 못된 성질을 발휘한다.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과 친분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고통이 될 수도 있다.

 

  둘째, 다른 사람의 불공정한 행동에 집중하기

  나 자신에게 있는 문제점보다 다른 사람의 문제점을 알아보는 일이 늘 더 쉽다. 하지만 문제의 양면을 모두 보지 않는 한 그 문제를 진정으로 안다고 할 수 없다. 그러므로 남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다른 사람, 즉 자신의 행복조차 책임질 수 없는 사람의 행동에만 집중하는 것을 그만두지 않는다면 결국 낙담하고 불행해지며 외톨이가 된다는 것을 명심하라.

 

  셋째, 제삼자에게 화풀이하기

  상처받아 화가 났지만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과 직접 상대할 수 없어서 이를테면 그 사람이 죽었거나 멀리 가버렸거나 또는 무서워서 대면할 수 없게 된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분노를 다른 대상에게 표출하기도 한다. 이때 다른 대상은 보통 힘이 약하므로 그 분노에 그다지(혹은 전혀) 거부반응을 보이지 못한 채 분노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 그런 식으로 화풀이를 하면 빗나간 위로감이나마 맛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자기 내부에 똬리를 튼 비통함 때문에 비롯되는 심각한 결과들을 줄이지는 못한다. 그리하여 자신의 상처와 분노 때문에 피해자만 늘어나는 꼴이 된다.

 

  넷째, 분노 외면하기

  이것은 앞에서도 다루었지만 한 번 더 말하겠다. 우리 중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화가 났다는 사실을 완전히 부정함으로써 분노를 해소하려고 한다. 그에 맞는 예를 찾아보자. 심리상담을 하는 친구가 우울증 치료를 받으러 온 환자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다. 그 환자는 몇 년 동안 계속된 어떤 부당한 일을 설명하면서 거의 20년 전 이야기까지 들춰내며, 온갖 욕설을 내뱉고 얼굴이 시뻘게지더니 걱정스러울 정도로 목에 핏대까지 솟았다고 한다. 그 사람이 말을 끝내자 내 친구는 그렇게 화난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환자는 당황스러운 얼굴로 이렇게 대답했다. “화가 나다니요? 저 화 안났는데요.”

 

  다섯째, 마음 속으로 복수하는 장면을 생각하기

  우리에게 상처를 준 사람이 용서를 구하지 않거나 심지어 잘못했다고 인정하지도 않으면 우리는 복수해서 되갚아줄 온갖 방법을 상상하면서 공평함을 되찾으려고 애쓴다. 이런 상상의 날개는 아주 비현실적인 수준으로 나아가기도 하고 꽤나 가능성 있는 내용이 되기도 한다. 현실에서 복수를 시도하든 안 하든, 이렇게 복수하는 장면을 상상하는 것은 마치 그 사람에게 벌을 주고 내면세계에 공평함을 되찾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듦으로써, 그러나 상상만으로는 현실의 삶이 공평해질 수 없으므로 우리를 바보로 만들어버린다.

 

  여섯째, 약물, 술 음식 이용하기

  상처 입은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분노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서 그 고통을 없애지 못한다. 그래서 자신의 어두운 감정들을 화학물질로 가라앉히거나 산더미 같은 음식물로 달래보려고 한다. 이런 대처법은 어느 정도 일시적인 위안을 줄 수 있다. 하지만 풀리지 않는 분노 때문에 생겨난 더 직접적인 문제 위에 의학적인 문제들을 한 트럭만큼 얹는 효과를 초래해 결국 문제를 더 나쁘게 만든다.

 

  일곱째, 삶을 냉소적으로 대하기

  당신이 살면서 마주치는 냉소주의자 중 몇 사람은 오랫동안 지속된 깊은 상처를 효과적으로 처리하지 못해 화가 난 사람들일 것이다. 그들은 더 나은 삶을 기약하는 어떤 것이라도 솜씨 좋게 조롱하는 능력을 지녔다. 그들은 비꼬고 조롱하는 데 전문가다. 그들은 자신이 한때 그려왔던 방식으로 삶이 진행되지 않자 이른바 ‘현실주의자’가 됨으로써 자신을 방어한다. 순진한 사람들의 천진난만한 희망에 비수를 꽂는데서 기쁨을 얻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와 같은 독이 되는 일곱 가지 전략은 효과도 없을 뿐더러, 사람들을 처음보다 더 나쁜 상태로 몰아간다. 만약 당신이 분노를 인정하고 그것을 효과적으로 다룰 건전한 전략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분노가 비통함으로 바뀌는 위험에 빠질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것들은 결국 당신을 파멸시킬 것이다.
-용서의 기술, 딕 티비츠, 알마, 85~89쪽





  내가 가장 많이 취하는 태도는 첫째, 넷째인 것 같다. 가장 경계하는 것은 셋째 그리고 일곱째. 분노의 씨앗은 타인에게 확산시키기 쉽고, 그 결과도 매우 치명적이며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가장 결정적인 예시로는 폭력가정에서 폭력성 혹은 상처를 안고 자란 사람들인데, 특히 어리고 약한 존재에게 벌이는 폭력이라는 것은 한 사람의 인생을 파괴할 뿐 아니라 그에 연계된 다른 사람들까지 좀먹는다.
  그리고 일곱째. 물론 순진하고 천진난만한 사람 편을 들고 싶지는 않지만, 그들의 희망을 파괴하는 것은 뭐라고 했든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냉소적인 사람은 실제로 굉장히 약한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말 함부로 던지고, 시니컬한 외면에서 굉장히 얇은 거죽을 들춰내면 그 안에는 말랑한 속살이 있다. 신뢰하거나 믿는 것에 배신당했을 경우의 후폭풍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부러 밀어낸달까. 연령이 어리고 자의식이 강하며 약한 사람들 중 냉소적인 사람을 많이 봤었지.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좋아했고, 어느 정도 동경하기도 했던 것 같다. 지금은 달라졌는데, 실제로 그런 사람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 '아무것도'에는 '자기자신을 성장시킨다'는 것도 포함된다.


  어릴 때부터 '왼쪽 뺨을 맞으면 오른쪽 뺨을 돌리라'는 식의 말을 좋아하지 않았다. 물론 이 책에서도 그런 얘기를 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는 상황을 피하자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하고 명징한 부분인 것 같다. 어차피 삶은 공평하지 않다. 상대방의 잘못 100%가 아닐 수도 있다('온전한 피해자'는 극히 드문 일이다. 특히 우리 일상에선). 분노한 원인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그 이야기는 커다랗게 부푼다. 사건의 내부에서는 사건을 온전히 볼 수 없고, 자기자신을 합리화시키는 변명만 덕지덕지 붙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실이 왜곡되기도 하고.

  용서할 것인가 말 것인가, 이건 오직 본인만이 정할 수 있는 문제. 채근하지 말고 찬찬히 생각하라. 그러나 분노에 사로잡혀 있으면 당신의 삶은 지옥이다.

  이런 얘기다. 아주 단순하고 누구나 알고 있는.
  하지만 실제 자기 일이 되었을 때, 제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문.





Posted by 이카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