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은2010. 4. 16. 18:26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이 정말 운명이었을까? 그냥 어린 나이에, 주변의 반대에 대한 반항심에 불이 붙은 것은 아닐까?
   사랑의 순도를 따지기 시작하면 끝이 없고, 나 자신에게 적용해도 마찬가지다.
   유독 힘들 때 만나서 사랑하게 된 것일까? 나는 내 의지로 너를 사랑하는 걸까? 아니면 우리는 아주 오래 전, 만나기로 예정된 운명일까?




   사랑하는 사람끼리 자주 나누는 질문 중에 "왜 나를 사랑하니?"가 있다. 참 대답하기 곤란한 말인데, 단순한 한두 마디로 대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외모가 잘 생겼거나 머리가 좋아서 좋아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대답의 전부가 될 수는 없다. 그게 답이 된다면 더 잘생기고 더 머리가 좋은 사람을 만났을 때 사랑은 변할 테니까. '나를 사랑하니까'라는 대답을 곱씹으면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나도 너를 사랑하지 않겠다는 답이 된다. '우리 사랑은 운명이었어'라는 근사한 대답이 있지만, 내 의지나 취향과 상관없이 운명적으로 사랑에 빠지지는 않는다. 결국 누구를 사랑하느냐 사랑하지 않느냐는 나의 선택이지만, 내 선택만으로 이루어졌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 딜레마는 사랑이 아닌 다른 감정에도 적용될 수 있다. "왜 화가났니?"라던가 "지금 기쁜 이유가 뭐니?"하는 질문에 대해 "발이 밟혀서."라고 답할 수도 있고, "꽃을 받아서"라고 답을 할 수도 있겠지만 이 답도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누군가가 당신의 발을 밟아서 화가 났다면, 당신은 발을 밟힌 모든 순간마다 화를 내야 한다. 하지만 예쁜 조카가 발을 밟았다고 화를 내지는 않는다. 꽃을 받을 때 기쁨을 느끼는 사람에게, 싫어하는 사람이 꽃을 선물하며 그가 기뻐하지 않는다고 화를 낼 수는 없다.
   프랑스의 철학자 리쾨르(Paul Ricoeur, 1913~2005)는 저서 '의지의 철학'에서 인간의 의식은 자기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명확하게 알지 못하며, 사고는 무의식과의 대화에서 이루어진다고 말했다. 이는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의 정신분석학에서 영향을 받은 것인데, 내가 인식하는 나는 위장된 것이며 진짜 자아는 무의식에 억압되어 있다는 말이다. 이 무의식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타고났거나 어릴 때의 체험이 작용하거나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축적된다.
   나라는 존재 안에는 내 자유 의지 외에도 태어날 때부터 결정된 것들과 살면서 영향을 받은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다. 김연아나 박태환이 세계 무대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둔 데는 그들의 의지도 작용했지만 타고난 신체조건도 무시할 수 없다. 또한, 신체조건과 의지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성장과정에서 알맞은 시기에 피겨스케이트나 수영을 접하지 못했다면 지금의 자리에 서지 못했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자유의지로 선택할 수 있는 폭은 좁고, 환경적인 영향은 무시할 수 없다. 고등학생이 문과나 이과를 선택하는 것, 손님이 옷가게에서 치마가 아닌 바지를 고르는 것은 단순한 의지 이외에 환경이나 신체적 조건 등이 반영되어 있다. 리쾨르는 이러한 환경적 요소들과 무의식을 운명으로 보았는데, 이 운명이 사람의 사고와 행동을 제약하는 틀이라고 생각했다. 즉, 이미 결정된 것이 현재 나의 행동에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내 행동은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똑같은 상황이나 환경에 처했다고 해서 같은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눈을 감고 머릿속으로 붉은 종이 상자를 하나 상상하자. 그리고 뚜껑을 열면, 그 안에 고양이 한 마리가 들어 있는 것이다. 똑같은 이 문장을 읽고도 어떤 사람은 마분지 종이 상자를, 누군가는 얼룩무늬 고양이를 상상할 것이며, 집에 같은 얼룩 무늬 고양이를 키우는 두 사람이 상상한다고 해도 그 고양이가 취할 포즈는 다르다.
   너와 내가 사랑하게 되는 데 작용한 요소들은 무수하지만, 그 요소를 적용한다고 해서 모두 사랑이 될 수는 없다. 결국, 만약 언젠가 카페에서 보았던 타로카드 점의 '올해 10월에 운명의 사람을 만나요'라는 점괘가 나의 운명이라면? 그래서 그 사람을 올해 10월에 만나게 된다면 그래도 해피엔딩일까? 하지만 운명은 마침표를 찍을 수 없다. 그 사람과 평생을 만날지 그냥 잠깐의 만남으로 흘려보낼지는 결국 나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불교에서는 옷깃 한 번 스치는 데 5백 겁(劫)의 인연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이 넓은 지구에서 누군가와 내가 아는 사람이라는 것마저 엄청난 확률이다. 그리고 그 사람과 사랑에 빠질 확률은 더욱 희박하다. 결국 그 확률을 실제 연애로 만드는 것은 나 자신이라는 것을 기억해야한다.

  "왜 나를 사랑하니?"라는 질문의 대답으로 "네가 내 운명이었고, 내 선택도 너였어."라는 대답은 어떨까? 아니면, "내가 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이유가 많아."라는 대답도 있다. 닭살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이것이 사실이다.


Posted by 이카리아